Sur l´eau 72

괴테가 쉴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덧붙이자면, 나의 활동량을 증대시키거나 나의 활동에 직접적으로 활기를 불어 넣지도 않으면서, 나를 그저 가르치려고만 드는 모든 것을, 나는 혐오한다." "Übrigens ist mir alles verhaßt, was mich bloß belehrt, ohne meine Tätigkeit zu vermehren oder unmittelbar zu beleben." (19. 12.1798) 오늘날 學者나 學生은 자신의 삶에 활기를 주지 못하는 지식, 심지어 자신의 마지막 남은 생명력조차 짓누르는 지식, 말하자면 상품화된, 그래서 사치스러운 지식의 과잉 속에서 질식당할 지경이다. 그 속에서 스스로 숨쉬기 조차 힘들어하는 學者나 學生은 어떤 지식이 나의 나됨을 만들어가기 위한 활동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

Sur l´eau 2012.05.08

瑤池鏡

귀국 첫날, 아파트 승강기 앞에서 유치원생 두 꼬마녀석들이 주고받던 말들, 날 당황스럽게 만들었다고 했지? 어제 밤엔 혼자 산책했어. 이곳은 주위가 대부분 시멘트로 치장되어 있지. 텁텁한 공기는 나를 약간 숨막히게까지 해. 비가 와도 흙냄새를 맡을 수가 없어. 학원에서 과외수업을 마친 중학생쯤 돼 보이는 소녀를 엄마가 마중나온 것 같았어. 그들의 대화를 본의아니게 엿듣게 됐지. 마중 나온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마냥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던 소녀는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어. 길거리에서 큰 목소리로, “동영상 개재밌어. 완전 개재밌어.” 그러더니 갑자기, “ㅈ나 어이없다”.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어. 그런 나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다시 한 번, “ㅈ나 어이없다” 귀여운 소녀의 입에서! 그것도 바로 옆..

Sur l´eau 2012.05.04

Jouissance

귀차니즘과 먹고사니즘에 길들여진 자.기.자.신.과.의.싸.움. 으로부터 오는 불쾌감이 참된 자기자신과의 만남이라는 짜릿한 쾌감으로 바뀔 때, 그것은 마치 칸트가 말했던 숭고한 감정과 유사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자신에 대한 畏敬, 자기자신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느낌 말이다! 왜? 저 싸움이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자기자신이 단순히 자기자신만의 수고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닌, 신적인 존재가 개입한 작품이라는 신비스러운 자기자신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겪어 본 사람만이 살아 있는 누군가를 비로소 진정으로 尊敬할 수 있고,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대할 수 있다. 쾌락이 일정한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고통으로 바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변태성욕자처럼 멈추지 못하는 상태가 있다. 라깡은 이런..

Sur l´eau 2012.05.02

홀로서기

서정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Sur l´eau 2012.04.25

짝짓기 게임

어릴 적 큰 둥근 원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면서 돌다가 하나가 숫자를 외치면 그만큼 모이는 짝짓기 게임이 있었다. 악착같은 생존본능을 요구했다. 성공했을 때 마냥 즐거웠고 실패했을 때 가슴철렁함이 교차했다. 거기에 너는 없었다. 거기에 나도 없었다. 집단적인 광기만 있었을 뿐. 아주 잔인한 즐거움이었고, 끔찍한 세상에 미리 단련시켜 주는 게임이었다. 그 사실은 다른 놀이와 다른 세상을 꿈꾸면서 알게 됐다. 2005년 2월 어느날. K.-S. Kim http://www.youtube.com/watch?v=Bp0SiE-11xA&feature=related

Sur l´eau 2012.04.18

방황

요즘 젊은이 가운데에는 방황 자체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방황 없이 최단거리로 달리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방황은 실패가 아닙니다. '자기답게 사는 길'을 찾는 데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입니다. - 최재천의《과학자의 서재》중에서 - 그랬다. 방황은 크로노스 (chronos) 안에서 자기상실의 고통이지만, 카이로스 (kairos) 안에서 자기만남의 행복이었다. 자기자신만으로 충분함을 찰나적으로 맛보았던 행복... K.-S. Kim

Sur l´eau 2012.04.14

우둔함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지적인 것의 진정한 징표는, 메피스토펠레스를 믿어도 된다면, 냄새를 맡고, "더듬으면서 보는" 달팽이의 촉수와 같은 것이다. 더듬이는 장애물을 발견하면 곧바로 자신의 몸을 집 속으로 철수하여 전체와 다시 하나가 되며, 그런 다음 얼마 후에 자립적인 것인 양 조심스럽게 다시 자신을 밖으로 내민다. 위험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면 더듬이는 다시 자신을 감추어 버린다. 이러한 시도가 되풀이되는 간격은 점점 커진다. 정신적인 삶은 처음에는 무한히 예민하다. 달팽이의 감각은 근육에 의존하고 있고, 이 근육은 자신의 활동이 장해를 당하면 굳어진다. 신체에 가해진 상처가 몸을 마비시킨다면 공포는 정신을 마비시킨다. 둘은 본래 결코 분리될 수 없다. M. Horkheimer/Th.W. Adorno, Dialektik d..

Sur l´eau 2012.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