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 u. Theo.

반유대주의와 계몽의 원리 (2)

Sur l´eau 2008. 5. 29. 22:49

반유대주의는 종교적 기원을 갖고 있다. 반유대주의는 메시아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유대교적 해석과 기독교적 해석의 차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대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의 아들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대교적 원리에 따르면 메시아는 재현될 수 없다. 따라서 메시아의 아들임을 자처하는 예수는 유대교적 원리에 의거하면 인정될 수 없다. 반면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의 육화된 정신임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가 혹은 인정하지 않는가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근본적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서로 상반된 해석을 내리고 있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임에 주목한다. 기독교는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유대교를 부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는 기독교가 인정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 종교이다. 하지만 아들의 종교인 기독교는 아버지 살해를 통해서만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적 원리로 볼 때 기독교는 반유대주의로 경사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지닌다.


하지만 저자들은 반유대주의가 기독교와 유대교의 종교적 원리의 차이에 따른 근본주의적 종교대립의 산물이라 보지 않는다. 저자들은 기독교 신학에 내재한 계몽의 원리와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기독교 신학의 원리를 이렇게 요약한다. "절대적인 것이 유한한 것에 가까이 다가오면 올수록 유한한 것은 절대화된다. 육화된 정신인 그리스도는 신격화된 주술사다. 인간이 스스로의 모습을 절대적인 것 속에 투영시키는 것과 그리스도를 통한 신의 인간화는 '1의 거짓말'이다. 유대교를 넘어서는 진보는 인간 예수가 신이라는 주장에 의해 얻어진 것이다."


저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기독교는 유대교를 넘어서는 '진보'적 종교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는 계몽 이전 상태와 계몽 이후 상태의 관계와 유사하다. 기독교는 계몽 이전에 속하는 유대교를 넘어서서 '진보'한 종교이다. 계몽이 '진보'를 제일 원리로 추구하면서 진보의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처럼, 유대교보다 진보한 종교인 기독교는 "자기유지의 본능은 그리스도를 모방함으로써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메시아가 '유한한' 예수 그리스도로 재현됨으로써, 진보한 종교인 기독교는 '유한자' '절대자'의 관계를 전도시켜 유한자를 절대화시키고 유한자를 신봉한다. 이러한 기독교의 원리는 계몽이 추구하는 '자기유지'의 원리와 유사하다. 기독교는 유한자를 통해 절대자를 재현한다. 계몽화된 정신은 유한자인 인간을 통해 절대자인 자연을 재현한다. 유약한 유한자 인간이 절대자 자연을 정복하고 자연정복을 통해 자기유지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진보를 이루었듯, 기독교는 유대교를 정복하고 유대교 정복을 통해 자기 유지를 획득한다. 따라서 계몽화된 기독교는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다.


노명우, 『계몽의 변증법-야만으로 후퇴하는 현대』, 살림 2005, 256-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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