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서야 비로소 책들을 받았다.
석 달 남짓 항해 끝에 나에게 돌아 온 낡고 오래된 책들, 자슥들 수고 많았다!
나를 보면서 자기를 열어, 어서 빨리 읽어 달라고 아우성치는 듯 했다.
한때는 어지간히도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녀석들이었는데, 각고 끝에 겨우 열어 볼라치면, 그리도 엄히 나를 꾸짖던 녀석들이었다. 이젠 마치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피운다.
손때 묻은 책장을 넘기면서, 독일에서 보냈던 시간, 그 잊지 못할 추억의 파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비겟츠 친구들, 박사논문 지도교수와의 첫 만남, 첫번째 박사과정 콜로키움, Stipendium, 노교수들의 脈 강의들, UKM, 새벽에 신문사 아르바이트, 주말 건물 청소아르바이트, 저 녀석들과 씨름하며 밤을 지새웠던 숱한 날들, Brot, 자전거, 가족과 함께 산책했던 시간 그리고 마지막 박사구두시험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그 당시 나는 너무나도 충실히 잘 따랐다.
책장에 다소곳이 꽂혀 있는 녀석들을 보니, 가슴 뭉클함과 뿌듯함이 밀려든다. 이 녀석들은 나에게 단순히 책이 아니다. 지나간 나의 이야기다. 이젠 이 녀석들과 더불어 새로운 나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겠다.
K.-S.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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