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 l´eau

Straubmühlweg

Sur l´eau 2012. 6. 19. 05:47

초록빛 바닷물처럼 

한 없이 펼쳐진 들판이었다

한 폭의 그림 속으로 나도 모르게 뛰어 들고 말았다.

 

한참을 걷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름모를 무성한 풀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겁이 났다

발바닥이 아팠다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뒤를 돌아 보니

너무 멀리 왔다

앞을 보니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들판의 한 중앙에 내가 서 있었다.

 

도취에서 깨어나

맨정신에 걷다 보니 고통스러웠다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 되었다.

 

울퉁불퉁한 바닥은

나의 발바닥을 아프게 했고

제멋대로 거칠게 자란 풀들은

나의 온 몸을 쏘아댔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야만 했다 들판의 끄트머리 오솔길에 서 있는 몇 그루 나무들만 바라보면서

 

나무들이 분명하게 보일 즈음

잠시 멈춰 서서 뒤돌아 보았다

처음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운 들판이었다.

 

이젠 이 길이 얼마 안 남았다

생각하니 아쉬웠다.

 

발바닥의 쓰라림도 익숙해졌다

풀들을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그들과 말을 주고 받았다.

 

문득 궁금했다

이들이 거칠었던 걸까

내가 거칠었던 걸까

 

두렵고 힘겨움에

미친듯이 밟고 지나갔을 때

풀들에겐 내가 거친 야생동물이었을까?

 

갑자기

런 물음이 나를 덮쳤을 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유유자적 서 있던 나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들판 주위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아까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왔다.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웠던

바로 그 들판이었다

나는 아까 내가

아니었다.

 

 

K.-S.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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