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 l´eau

성격적 탁월성

Sur l´eau 2017. 5. 12. 22:19

아리스토텔레스_-_성격적_탁월성과_악덕의_도표.pdf

 

 

 

※ 에피쿠로스학파의 한 철학자의 말:

 

여보게 토마스, 자네는 내 논증의 맥락을 잘못 짚었네. 내 논증은 처음부터 가사성에 대한 의식에서 오는 고통이나 삶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겨냥한 것이 아니네. 내 논증의 목적은 사후 세계의 존재나 사후의 처벌 등에 대한 잘못된 믿음에서 오는 두려움과 그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지. 자네도 플라톤의 <국가>를 읽었을 테니, 노년의 케팔로스가 한 말을 기억하겠지? 그는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이제껏 웃어 넘겼던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다가오면서 두려움과 염려에 가득차게 된다고 말하지. 사후 세계에서 겪을 나쁜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설령 가사성에 대한 의식을 떨쳐버리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현재의 삶이 주는 즐거움을 최대한 누리는 데 몰두할 수 있지 않겠나? 또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은 뒤의 상벌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불사의 삶에 대한 헛된 갈망에서도 벗어나 두려움도 희망도 없이 현재를 살수 있지 않겠나? 그런 사람은 플라톤의 영혼불멸론 같은 사이비 이론에 정신을 빼앗겨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없이 그 소중한 시간을 더 즐거운 일을 위해 쓸 걸세. 이것이야말로 죽음의 본성에 대한 앎이 주는 최대의 쾌락이 아닌가? 자네도 에피쿠로스의 돼지를 자처한 내 후배 호라티우스의 ‘Carpe diem’을 잘 알지? ‘지혜롭거라. 포도주를 맑게 하라. 짧은 인생에 맞춰 긴 희망을 잘라 내거라. 우리가 말하는 사이 시간은 시기하듯 도망친다. 이날을 잡아라. 뒷날은 좀처럼 믿지 말거라.’(Carmina 1, 11) - 영혼의 불멸 따위에 정신을 빼앗겨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 죽음을 삶의 상실로 여기면서 죽음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삶의 상실이네. 이것이 내가 자네나, 죽음의 문제로 고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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